2013년 제작되어 우리나라에서는 2014년 개봉했던 영화 '오스카 그랜트의 어떤 하루'는 실제 미국에서 일어났던 일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실제사건과 이후 어떻게 사건이 흘러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영화가 아닌 실제 프루트 베일 사건은 어떠했을까?
이 사건은 2009년 새해의 첫날 캘리포니아의 오클랜드 프루트베일 역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해 보겠습니다.
2008년의 마지막날, 오스카 그랜트와 그의 친구들은 샌프란시스코에서 2008년의 마지막날과 2009년의 첫날을 기념한 훈 이스트베이 지역으로 돌아가기 위해 BART열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 열차 안에서 싸움이 벌어지게 되는데 이 보고를 받은 BART 경찰들이 프루트베일 역에서 해당 싸움에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몇몇의 인물들을 억류합니다.BART의 경찰관 중 한 명인 앤서니 피론은 당시 오스카 그랜트의 머리를 무릎으로 불러 플랫폼에 엎드리게 하는 등의 강압적인 무력을 행사했으며 뒤이어 또 다른 BART의 경찰관인 요하네스 메셀은 오스카 그랜드를 향해 총격을 가했습니다. 총격을 가한 이후에도 오스카 그랜드의 손목에 추가로 수갑을 채우는 등의 진압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건 직후 오스카 그랜트는 오클랜드에 위치한 하이랜드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늦은 오후 사망하게 됩니다.
오스카 그랜트는 당시 22세였으며 아프리카계의 흑인 미국 청년이었으며 어린 딸이 있었습니다.
BART : Bay Area Rapid Transit Police Department
BART는 Bay Area Rapid Transit의 약자로 미국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을 운행하는 대중교통 시스템입니다. 제공되는 교통서비스로는 급행열차, 버스 및 기타 형태의 대중교통이 포함되며 베이 지역의 여러 카운티에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사건이 일어난 후의 이야기
오스카 그랜트가 사망선고를 받은 후 2009년 1월 14일 요하네스 메쉘은 해당사건의 살인혐의로 기소되었으며, 이 재판은 2010년 6월 10일부터 시작됩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이 사건에 연루된 경찰관들은 대부분 자신들은 무죄이며 오스카 그랜트가 자신들을 지속적으로 모욕했다는 등의 주장으로 자신들의 무력진압의 정당성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당시 대부분의 목격자들의 증언들과는 대치된 것이었고, 뒤 이어 이어진 조사에서도 그들이 자신들의 무죄를 위해 일부 사실들에 거짓말을 했다는 점들이 연이어 밝혀지게 됩니다. 지역방송국등의 매체를 통해 이날의 사건을 촬영한 휴대폰 영상들이 방송되기 시작했으며 이 영상들에는 그들의 주장과 상반된 내용들이 담겨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월 23일 지역 텔레비전 방송국 KTVU에서 방송된 휴대폰 촬영 영상에는 안소니 피론이 그랜트의 얼굴을 때리는 듯한 장면이 들어있기도 했고 당시 일부 목격자들 또한 이와 유사한 증언들을 했습니다. 2019년 5월 내부 보고서가 공개되기 전가지 가해자 측의 변호사는 그랜트가 경찰들의 지시에 저항하며 이들을 자극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합니다. 피론과 메셀측의 변호사들이 주장했던 그랜트의 폭력적인 행위와 저항들은 이후 당시 현장에서 촬영되었던 휴대폰 동영상들을 통해 거짓이었거나 오히려 반대의 상황이었음이 밝혀지며 해당사건에 대한 분노를 키우게 됩니다.
재판의 결과
재판결과, 요하네스 메쉘은 비자발적 살인에 대해 유죄가 인정되어 2년형을 선고받았으며 이후 약 11개월을 복역하고 가석방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해당지역을 떠나 다른 지역에서 새로운 신분으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건의 또 다른 가해자인 안소니 피론은 사건 직후 BART에서 정책위반등의 사항으로 해고되었지만 해당 사건으로 인해 기소되지는 않았습니다. 이후 피런은 그랜트 가족들에게 500만 달러의 소송을 당하게 되지만 이에 150만 달러의 합의를 한 후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요하네스 메쉘의 죄가 비자발적 살인인 이유.
당시 사건을 촬영했던 수많은 영상들 중에 그랜트에게 총을 발사한 메쉘이 직후에 놀라서 당황하며 소리치는 장면이 포착된 영상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가 그랜트를 향해 쏜 총격자체는 의도한 것이 아니었음을 뒷받침하는 장면이 되기도 합니다.
해당사건이 사회에 미친 결과와 분노의 이유
오스카 그랜드의 죽음은 당시 개인의 죽음 이상의 의미로 미국사회를 흔들어놓았습니다. 흑인과 백인간의 인종차별 문제는 해묵은 미국사회의 문제였던 만큼 해당사건이 촉발제의 역할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특히 오스카 그랜트가 속했던 인종 커뮤니티, 즉 아프리카 계 미국인들의 분노는 시위로 이어졌으며 흑인들에 대한 경찰들의 폭력적 진압행위 혹은 인종 프로파일링의 대표적인 예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BART은 무력 정책 사용 기준에 다양한 변화를 적용했고 실질적으로 바디캠등의 장비를 사용하여 불합리한 무력사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는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게 됩니다.
인종프로파일링이란?
인종프로파일링이란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사건과 특정인물을 관련짓는 맥락의 기준으로 인종이나 민족을 사용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대표적인 인종차별의 행태 중 하나로 특히 공권력을 사용하는 기관이 그 힘을 사용하는 대상을 선별하는 과정에 이용된다는 점에서 주의해야 할 행위이기도 합니다.
소셜미디어와 휴대폰 동영상의 영향
당시 이 사건은 휴대폰 동영상과 SNS를 통한 해당사건의 전파가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목격자들이 촬영했던 휴대폰 영상들이 피해자의 결백과 해당 사건의 재판과정에서 거듭 주장되고 있던 거짓들을 밝혀내는 주요 증거가 되었음은 물론 사회적 이슈로 사건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프루트 베일 사건을 알아본 후의 소감
해당사건은 한국에 살고 있던 저에게도 꽤 충격적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미국사회에 남아있는 흑인과 백인의 인종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표출되는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 중 하나였고,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던 사건이었기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당시에는 흑인이라는 인종으로 인해 여전히 차별을 받고 있는 그들에 대해 굉장히 안쓰럽고 동시에 분노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지금은 조금 다른 생각이 드는 부분도 있습니다. 왜일까요? 미국 사회에는 흑인과 백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동양인도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의 국제 뉴스에서는 오히려 흑인 인종차별보단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이야기되곤 합니다.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은 원래 없었던 것이 생긴 것이 아니라 이제야 관심을 받게 된 것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문제는 아시아인들을 향한 폭행과 폭언을 쏟는 다른 인종의 사람들은 백인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흑인들이 아시아인을 향해 폭언과 폭행을 하는 장면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자신들을 향한 차별과 폭력은 부당하다고 항변하던 그들이 아시아인을 향해서 같은 종류의 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 우습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흑인들이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일부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곧 그 사회 전체에 흐르는 의식이나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지금을 살아가는 저로서는 한편에 남는 씁쓸함은 감출 수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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