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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킹메이커 실존인물 선거운동의 귀재 엄창록은 누구일까?

by 호시리오 2023.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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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개봉한 영화 킹메이커는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사실을 재현과 재해석한 영화 중 하나입니다. 1970년 당시 지금은 현대 정치사의 거물로 늘 언급되고 있는 양김, 즉 김영삼과 김영삼 두 전 대통령이 대통령 선거를 놓고 갈등과 분열을 하던 당시의 시대를 조명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김대중, 그리고 엄창록

영화의 제목이 킹메이커라는 것만을 보아도 이 영화의 중심인물은 당시 대통령선거에 출사표를 던지며 경쟁하던 양김이 아닌 누군가를 대통령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내어놓은 역사속의 누군가를 중심으로 놓고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1970년 당시 일명 선거 전략가로 활동한 엄창록이라는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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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숨겨진 노력과 다양한 종류의 두뇌싸움들이 활용되는지도 이 영화를 통해 조금은 살펴볼 수 있는 영화임은 물론, 연기력 좋은 배우들의 열연까지 더해지는 만큼 아직 보지 못하셨다면 한번쯤 추천할만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 영화 킹메이커에 등장하는 인물 중 우리에게는 새로운 인물처럼 느껴졌던 인물, 엄창록의 실제 기록에 대해 정리해보았습니다.

 

히틀러의 괴벨스, 그리고 김대중의 엄창록

우리는 흔히 역사속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위한 정치선전가를 이야기할 때 나치와 히틀러의 요제프 괴벨스를 예로 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실제 괴벨스에 얽힌 일화나 그가 실제로 행했다고 알려진 정치선전들을 살펴보면 그가 가진 선전능력은 그것의 목적여하와 상관없이 굉장히 뛰어난 것이었음이 확실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괴벨스의 경우 그 자신이 매우 악의적인 의도를 가진 반유대주의론자였고 자신이 가진 능력을 가장 극단적인 목적을 위해 사용했다는 역사적 사실 때문에 그의 능력이 뛰어남과는 별개로 엄청난 비판을 받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김대중의 선거참모로 오랜시간동안 그를 도왔던 엄창록의 경우는 어떠할까요? 한국의 괴벨스로도 비유되는 엄창록 역시 뛰어난 수완과 선전으로 김대중의 선거를 돕는 동안 다양한 형태의 선전활동을 기획, 수행하였음은 물론 그가 수행한 기획들이 엄청난 성과를 거두게 되면서 그 능력만큼은 인정받기도 합니다.

 

물론 시간이 흘러 현대 이르러서는 그의 다양한 선전기획들 중 일부가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괴벨스나 엄창록 모두 선전능력하나만큼은 대단히 뛰어난 수완으로 이끌어내었다는 점입니다.

 

 

엄창록의 선거운동 그리고 지역감정

엄창록의 선전활동 중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내용은 그가 현재의 지역감정을 최초로 구상하고 이를 실제로 만들어냈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이야 전라도와 경상도가 가지는 지역감정이 태초부터 있었던 것인냥 매우 자연스럽고 매우 그 역사가 오래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 이 지역감정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은 엄창럭이 김대중의 선거를 시절부터이며, 구체적으로는 1970년대부터이니, 기껏해야 5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이 새삼 놀랍기도 합니다.

 

실제로 역사적 기록이나 흔적들을 찾아보면 1970년 이전의 대한민국은 지역에 따라 지지하는 정당이 달라졌다기 보다는 지역의 발전이나 구성에 따라 정치적 성향이 나뉘는 분위기였는데 도시지역은 야권을 지지하는 지지자가 많았고, 농촌이나 어촌, 산촌지역은 상대적으로 여권을 지지하는 성향의 인구가 비중이 높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말 그대로 경상도는 보수, 전라도는 진보의 구분이 아닌 도시는 진보, 시골은 보수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분위기가 1970년대의 선거판에서부터 일명 '호남 푸대접'론을 통해 지역적으로 양분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 선거에서 김대중 후보의 선거참모로 활발한 활동과 뛰어난 지략을 보여준 엄창록이 최초 지역감정을 설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인데. 사실 이후 연구에 따르면 이 부분은 살짝 와전된 것으로 엄창록이 지역감정을 최초로 설계하여 김대중을 위해 선거판에 지역감정을 이용했던 것이라기 보다는 이미 지역에서 대두되고 있던 문제 중 하나를 엄창록이 조금 더 강화하여 선거에 이용했던 쪽이 더 맞는 해석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지역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사실 지역감정 자체는 엄창록이 아닌 1970년 이전인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부터 신민당 후보들이 이런 인식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1967년 대선시에는 당시 윤보선 후보가 이런 문제를 유세에서 공식적으로 언급하기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선거에서도 전남과 경상도가 박정희에게 준 표의 비율은 49대 51정도의 비율이었던 것을 보면 이 시기까지는 구체적으로 실체가 있는 지역감정이 있었다기 보다는 당시까지 뭔지 모를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던 호남지역민들의 감정이 1970년대의 정치적 상황을 겪으며 구체적으로 형태를 갖추고 폭발한것이라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엄창록의 기록

엄창록은 여러 기록상으로 1970년대 김대중의 선거참모로 큰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대선을 앞두고 1971년에 한동안 실종상태로 사라지는 미스테리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물론 그는 이후 일정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살아서 돌아오긴 하지만 그가 사라진 동안 선거에서 나름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있던 김대중의 선거 분위기는 급격하게 기울게 되고, 이 시기를 틈타 다시 박정희가 지지율을 올려 결국 해당 선거에서 김대중이 아닌 박정희가 당선되는 급격한 변화가 발생합니다.

 

그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대선이 종료된 후 였고, 이후 그가 그토록 대통령의 자리에 올리고 싶어했던 김대중과는 남은 일생동안 만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가 모습을 감춘 실종기간동안, 사실은 박정희의 선거캠프에서 활동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음모론이 꽤 근거있는 소문으로 퍼지기도 했습니다.

 

이후 칩거에 가까운 생활을 하다 1988년 사망에 이릅니다.

 

아마도 이러한 미스테리한 부분들과 명확하게 풀리지 않은 당시 상황에 대한 미스테리함이 그에 대한 영화화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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