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미국에서 개봉 된 영화 <콜드마운틴>은 미국에서 2003년 연말에 개봉 후 2004년 한국개봉에서도 꽤 성공을 거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찰스 프리지에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안소니 밍겔라가 연출한 이 작품에는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니콜키드먼과 주드로, 르네 젤위거 등 당대 최고의 스타들이 출연하며, 당시에도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다수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기도 한 명작입니다.
찰스 프리지에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 그리고 실존인물
이 영화는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당시 남부군에서 복무했던 인만이라는 군인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동명의 소설 역시 동일한 구조로 되어있는데 이 영화가 동명의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는 사실은 개봉당시에도 많이 알려진 사실에 속했지만,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남부군인 인만이 실존인물인것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소설과 영화 모두 일정정도의 각색이 더해졌기에 이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모든 이야기가 실화인것은 아니지만, 일정부분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이야기이기에 이번 포스팅에서는 영화 <콜드 마운틴>과 그 실존인물 윌리엄 P. 인만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864년 피터즈버그 포위 작전
영화가 다루고 있는 역사적 배경은 노예제도를 두고 미국이 남북으로 갈라져 전쟁을 일으켰던 남북전쟁이며, 그 중에서도 1864년 피터즈버그 포위 작전을 주요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전투장면이 바로 이 피터즈버그 포위작전의 일부를 보여주는 장면인데 실제 역사에서도 이 전투는 참호전투가 시작된 배경으로 지목될 정도로 의미가 깊은 전투이기도 합니다.
피터즈버그 포위작전에서 실행되었던 작전들은 거의 영화와 유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 역사에서도 북군은 남군의 방어선을 무너뜨리기 위해 지하갱도를 파고 여기에 폭탄을 터트려 방어선을 저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작전을 수립했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이렇다할 시뮬레이션 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이 지하갱도가 터지면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구체적으로 예측하지 못했고, 북군은 자신들이 터트린 폭탄으로 인해 발생한 일종의 크레이터에 오히려 매몰되게 되면서 오히려 자신들이 구덩이에 갇히게 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이 전투에서는 결과적으로 북군이 오히려 남군에게 포위당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3800명에 이르는 북군의 인원이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남부군인 윌리엄 P. 인만, 탈영하다.
영화의 시작에서 보여주는 1864년 피터즈버그 포위 작전에서 극 중 인만은 함께 남군으로 차출되어 온 같은 고향의 젊은 병사의 죽음을 눈 앞에서 목도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가 남긴 먼저 고향으로 가 있겠다는 말을 듣고 탈영을 결심하게 됩니다. 실제 남북전쟁에서 인만과 같이 탈영을 하는 군인들의 수는 생각보다 많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남북전쟁 자체가 우리나라의 역사는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흔히 노예제도를 찬성하는 남군과, 이를 반대하는 북군으로만 그 대립을 알고 있지만 실제 남군과 북군의 구성은 생각보다 다양했기에 남군에 속해있더라도 실제 노예제도가 필요했던 지역은 제한적이었던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연히 노예제도로 인해 촉발된 남북전쟁에 대해 노예제도가 필수적이지 않았던 일부 남부지역의 군인들은 전쟁의 시간이 지날수록 회의가 깊어질 수 밖에 없었고 이 작품의 등장인물인 인만 역시 노예제도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콜드 마운틴은 노스캐롤라이나에 위치한 산의 이름입니다.) 그 역시 주변인들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전쟁에 대한 깊은 회의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시달리게 됩니다.
실제 남부군인들 역시 이런 문제로 인해 탈영병문제로 골치를 앓게 되었고, 윌리엄 P. 인만처럼 탈영을 감행하는 젊은이들의 수가 늘어나게 되면서 이 역시 남부군의 패배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윌리엄 P. 인만에 대하여
윌리엄 P. 인만은 제25 노스캐롤라이나 보병연대 F중대에서 복무하였으며 입대당시의 나이는 22세로 1861년 6월 29일부터 헤이우드 카운티에 있는 토마스 I. 레누아르 대위의 노스캐롤라이나 주 제25군 중대에 복무하였습니다. 그는 1862년 7월 1일 버지니아주 Malvern Hill 전투에서 7일 작전과 북군 장군 George B. McClellan의 리치몬드 점령 시도로 행해졌던 몇몇의 교전중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이 부상을 치료하던 중 그가 복무하고 있던 부대가 참여한 다음 전투로 알려진 앤티텀 전투가 벌어지기 12일 전인 1862년 9월 5일에 탈영합니다.
이후 곧 다시 복귀하여 복무를 이어가다 영화 <콜드마운틴>의 시작에 보여지는 1864년 7월 30일 피터즈버그 포위 작전 참가했으며 이후 8월 21일 목에 총상을 입고 부상의 치료를 위해 입원했다가 다시 복귀, 이후 1864년 11월~12월 사이의 어느 날 재탈영한 것으로 기록상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시 탈영, 그리고...
이후 실존인물인 윌리엄 P. 인만에 대한 기록에는 약간의 중복된 기록이나 서로 대치되는 기록들이 발견되게 되는데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윌리엄 P. 인만의 가족 중 총 다섯명의 형제가 남북전쟁에 참여했으며 이 중 조슈아 인만과 로이스 H. 인만이 윌리엄 P. 인만과 같은 부대에서 복무를 하게 되면서 기록에 혼선이 생긴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영화 <콜드 마운틴>에서 윌리엄 P. 인만은 우여곡절 끝에 그의 고향 콜드마운틴으로 돌아와 연인인 에이다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잠시의 행복을 느끼지만 이내 탈영병을 추적하는 향토방위군과의 대치로 인해 결국 총을 맞고 사망하게 됩니다. 실제 역사속의 윌리엄 P. 인만 역시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남아있는데 생존 가족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윌리엄 P. 인만 역시 향토방위군에 의해 집에서 약 3~4마일 떨어진 곳에서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실존인물 윌리엄 P. 인만의 역사적 기록
1861년 6월 29일부터 헤이우드 카운티에 있는 토마스 I. 레누아르 대위의 노스캐롤라이나 주 제25군 중대에 복무 시작
1862년 7월 1일 교전 중 부상
1862년 9월 5일 탈영 (형제인 로이스 H. 인만과 윌리엄 P. 인만이 동반 탈영한 것으로 추측)
1862년 11월 19일 부대복귀 (형제인 로이스 H. 인만과 윌리엄 P. 인만이 동반 복귀) 후 사면.
1864년 7월 30일 피터즈버그 포위 작전 참가
1864년 8월 21일 목에 총상
1864년 10월 11일 퇴원
1864년 11월~12월 중 탈영
1864년 11월 2일 명부에서 제외
전쟁의 참상.
영화 <콜드마운틴>은 전쟁에 참여한 한 청년과 그 청년을 기다리는 여성을 통해 전쟁이 인간들에게 미치는 다양한 측면의 영향과 전쟁의 참상에 대해 보여줍니다. 손에 물 한방울 묻혀 본적 없는 곱게 자란 여성은 총을 들고 누군가를 향해 총구를 겨눌 정도로 강인해져야만 하고,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던 청년은 바로 눈 앞에서 어제까지 이야기를 나누던 소년의 죽음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일상이 파괴된 이들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마주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등 여러 모습으로 과거를 통해 현재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벌써 20년이 된 영화이지만 여전한 감동이 있음은 물론, 현재에도 활동하는 헐리웃 배우들의 20년 전 전성기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니, 한번쯤 감상을 추천드립니다.
2023.09.12 - [분류 전체보기] - 대장금 실존인물 의녀 서장금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2023.09.10 - [분류 전체보기] - 영화 가여운 것들 실화 모티브 - 프랑켄슈타인 실험이 실제있었나?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