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18일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에도 민주화를 위한 노력은 끊이지 않고 지속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노력들이 이어져 1987년 6월의 민주항쟁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영화 1987은 바로 이 과정을 담은 영화입니다.
1. 박종철 군 고문치사 은폐 축소사건
대한민국의 민주화 역사는 생각보다 길고 지난한 시간을 견뎌낸 인고의 연속이었습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 운동이 끝내 많은 시민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군부세력의 무력에 의해 진압당하게 된 후 꽤 오랜 시간 동안 크고 작은 데모와 학생들의 시위들이 반복하여 일어났음에도 이렇다 할 뚜렷한 성과를 얻지 못한 채 숨죽여 살아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민주화를 향한 열망은 식지 않고 흐르고 있었고 이 열망들에 불을 지핀 사건이 1987년 1월에 발생하게 됩니다.
1987년 1월 14일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군이 남영동의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다가 사망합니다. 당시 박종철 군의 사인은 물고문에 의한 질식사였지만 해당 업무를 담당하던 대공분실의 담당자들은 이 사실을 덮기 위해 박종철 군의 사인을 쇼크사로 위장하여 부검 없이 화장을 시도하였습니다. 다행히 너무 성급한 장례절차에 의문을 품은 당시 검사가 이를 승인하는 대신 시신을 보전할 수 있도록 하는 시신보존명령서를 발부하지만 대공분실은 기자들에게 박종철 군이 쇼크사하였다고 일방 발표합니다. 이후 여러 과정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시신의 부검을 진행한 후 박종철 군의 사인이 쇼크사가 아닌 질식사로 밝혀지게 되고, 이 사실이 동아일보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되면서 국민적인 공분이 일어나게 되었고 이 시간으로 6월 민주항쟁까지 이어지는 촉매제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2.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의 의미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은 당시 시대상의 단면들을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기본적인 인권조차 지켜지지 않았던 사회상과 법 체계마저 무시한 채 공권력을 휘둘렀던 당시의 정부인사의 부패, 권력이 휘둘렀던 부당한 압력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군사정권의 부당함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해당사건이 발생했던 1987년에는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변수들이 발생해 국내에서는 민주화에 대한 욕구가 커질 대로 커진 상황이었음은 물론 정권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의 제기도 꾸준하게 일어나고 있었던 상황이었기에 이 사건이 발화점이 되어 다시 한번 민주화를 향한 열망들이 터져 나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실제 이 사건이 시작이 되어 6월 항쟁이 이어졌고, 이 운동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대통령 직선제라는 성과와 함께 그 동안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야당의 성장등을 이루게 됩닏.
3. 영화 1987의 6월 항쟁
영화 1987 역시 해당 사건을 중심으로 이후 6.29 선언까지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민주화 운동의 일면을 보여줍니다. 해당 사건들이 가지고 있었던 의미와 함께 박종철 군 고문치사사건과 6월 항쟁이 어떤 과정을 통해 대규모 시위로 커졌는지의 과정을 평범한 한 학생의 관점에서 살펴보면서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된 영화이기도 합니다. 6월을 앞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화된 현재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 번쯤 다시 볼만한 영화로 추천드립니다.
현재 해당 영화는 넷플릭스와 왓차등의 OTT서비스를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2023.05.17 - [분류 전체보기] -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을 그린 영화 택시 운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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