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클래식 음악, 백인만이 연주하고 백인만이 만들었던 그 음악을 1700년대에 이미 도전하고 인정받았던 흑인 작곡가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조셉 볼로냐 슈발리에 드 생 조르주입니다.

1. 프랑스인, 펜싱선수, 연주가, 작곡가, 그리고 흑인
조셉 볼로냐 슈발리에 드 생 조르주(Joseph Bologne, Chevalier de Saint-George)는 1745년 12월 25일 출생한 프랑스 혼혈의 인물입니다. 펜싱선수였으며 바이올리니스트였고, 지휘자 및 작곡자로 인정받은 인물로 아프리카계 최초의 고전 작곡가이기도 합니다.
사실 그가 이렇게 흑인이라는 인종적 한계를 극복하고 프랑스 내에서 여러 지위에 오르기 가지는 그의 탄생이 여러 조건이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외모는 흑인이었지만 아버지가 프랑스 식민지인 과들루프의 부유한 백인 농장주였습니다. 또한 그가 교육을 받기를 원했던 어머니의 의견을 존중해 프랑스로 아들을 보내게 되는데 당시 프랑스의 경우 노예신분을 자동으로 해방하는 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조셉 볼로냐 슈발리에 드 생 조르주가 자유인의 신분을 얻게 됩니다.(어머니는 세네갈 출신의 노예였기 때문에 이 당시까지 조셉 볼로냐 슈발리에 드 생 조르주는 신분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뒤이어 13세부터 승마와 펜싱등의 교육을 받았고, 특히 펜싱등에는 뒤어난 재능을 발휘해 프랑스 내의 국가행사들을 수행하는 일원인 "gendarme de la garde du roi"로 인정받기기도 합니다.
물론 인종의 문제가 그의 성공가도에 방해요소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특히 백인의 전유물로 여겨지다시피 한 클래식 음악에 그가 발일 딛게 되면서 이런 문제들이 왕왕 발생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셉 볼로냐 슈발리에 드 생 조르주(Joseph Bologne, Chevalier de Saint-George)는 자신의 뛰어난 재능과 노력으로 이 문제들를 극복해 나가며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활동하기도 합니다.
2. 그의 재발견
1789년 프랑스 혁명의 발발 이후 조셉 볼로냐 슈발리에 드 생 조르주(Joseph Bologne, Chevalier de Saint-George)는 영국으로 잠시 떠나 있었지만 이내 복귀, 이후에는 오스트리아의 공격으로부터 프랑스 북부를 지키는 군의 대령으로 복무하기도 합니다. 그의 이런 활동영역의 변화는 자신이 흑인으로서 받았던 불합리한 것들에 대한 일종의 반감이 작용한 것이라는 해석들이 지배적입니다. 특히 마리앙투아네트의 경우 조셉 볼로냐 슈발리에 드 생 조르주(Joseph Bologne, Chevalier de Saint-George)의 음악적 가르침을 받았으면서도 이후 그가 파리의 오케스트라에서 도움이 필요했을 때에는 정작 도움을 주지 않았고 이 사건이 조셉 볼로냐 슈발리에 드 생 조르주(Joseph Bologne, Chevalier de Saint-George)에게는 흑인이기에 받는 냉대로 여겨졌으리라고 보여집니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조셉 볼로냐 슈발리에 드 생 조르주(Joseph Bologne, Chevalier de Saint-George)는 본인이 음악가로서 활동하던 당시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뛰어난 음악적 역량과 많은 작품들로 칭송받았던 인물입니다. 다만 그가 모차르트와 동시시대 활동했던 만큼 마치 살리에르가 그랬던 것만큼 상대적인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후의 문화 역시 백인위주로 흘러갔기에 조셉 볼로냐 슈발리에 드 생 조르주(Joseph Bologne, Chevalier de Saint-George)의 인종적인 한계가 이후 역사에서 그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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